나무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 준비에 들어갈 즈음.
숲길을 걷다가 발 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유난히도 초록 초록한 풀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나왔는지 봄에나 볼 수 있는 풀들이 여기저기 살고 있었다. 앞으로 추워질 텐데, 저렇게 연약한 잎들을 달고 나와서 뭘 어쩌자는 건지. 안쓰러운 마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며 로제트식물들의 사는 방법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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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딱 붙어있는 이끼류가 융단처럼 펼쳐져 있고, 사이사이에 개망초, 민들레, 꽃마리, 냉이, 개갓냉이, 우산이끼, 등이 보였다. 이끼류는 빛이 잘 들지 않은 담벼락 아래나, 구석진 곳, 습도가 많이 있는 곳에서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가을이 깊어질수록 나무 아래나 등산로길에서도 쉽게 보인다는 점도 새로웠다. 오늘 새삼스럽게 눈에 띄는 것은 아닐까. 예전부터 이곳에서 쭉 살고 있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하지만 요즘 산책하면서 날이 갈수록 푸르게 자라고 있는 풀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살고 있는 풀들의 사는 방법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곳에 있는 풀들은 거의 겨울을 나고 봄에 꽃을 피는 식물은 대부분 두 해살이 풀이다. 이들을 로제트식물, 방석 식물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바닥에 잎을 방사형으로 쫙 늘어놓고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붙여준 이름이기도 하다. 그들은 가을에 싹이 나서 혹독한 겨울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땅에 붙어살고 있다가 따뜻한 봄이 오면 누구보다도 먼저 줄기를 키우고 꽃을 풍성하게 피워내고 엄청 많은 씨앗을 만들어 번식한다. 그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들은 왜 그런 삶을 선택했을까? 키가 작은 식물들은 나무가 자라고 있는 동안에는 충분하게 햇빛을 받을 수 없다. 식물이 살아가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햇빛이 필요하건만, 키가 큰 나무들과는 도저히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찌감치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땅에 햇빛이 닿기 시작하는 늦가을 즈음 싹을 발아하고 겨울에 살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나무의 전성기는 가고 로제트식물들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풀들에게도 고난의 시기이기도 한 겨울. 기온이 영하 15도 이상 내려가는 시간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에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로제트식물들은 두려움 없이 싹을 틔우고 씩씩하게 겨울을 살아간다.
로제트 식물들이 살아가는 방법에는 최대한 땅에 붙어사는 것이다. 땅에 잎을 여러 겹으로 펼쳐 이불을 덮듯 잎으로 땅을 덮고 지열을 이용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차가운 바람을 피할 수 있어 얼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리고 지상부를 키우기보다는 지하부, 즉 뿌리를 키우는 것이다. 겨울에는 대지가 수분이 빨리 마르지 않고 어느 정도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눈이 오고 난 후에 기온이 내려가면 한참 동안 수분이 얼어있는 상태나 촉촉한 상태로 유지된다. 거기에 따듯한 햇빛과 기온이 조금이라도 유지된다면 언제든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그렇게 된다면 영양분을 충분히 모을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겨울을 사는 로제트 식물들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도 쉽게 열지 않는다.
그래서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로제트식물들은 겨울이라도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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